마을공동체 문화의 고유한 특성이 오늘날 지속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도시는 당연히 익명성과 개인주의의 공간인 것처럼 여겨져 왔고, ‘마을공동체’는 농촌에 남아 있을 법한 그리움의 대상처럼 인식됐다. 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취지로, 이미 도시화된 지역에서조차도 마을공동체 활동의 정서적 기원과 문화적 코드를 농촌공동체에서 찾고자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도시에 농촌 문화를 적용하기에는 이질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생산 기술이 덜 복잡했던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같은 기술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활용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 농업 기술에 익숙한 연장자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이 고도화되고 급변하는 도시에서는 오히려 미래 세대가 가장 앞서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고 활용할 수도 있다. 이제는 청년의 전문성과 어른의 지혜가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앞선 마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시민사회 운동으로서 마을공동체 활동이 가지는 특성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풀뿌리’ 마을공동체 운동은, 집약적인 성장을 위해 중앙에 많은 것을 집중하고 지방자치를 유보했던 국가체계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띠며 출발한 측면이 있다. 그 과정에서 기성 문화에 대한 ‘저항’의 문화가 발현되고, 소박함과 투박함이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화가 과연 화려한 콘텐츠와 규모의 경제가 압도하는 오늘날 우선적으로 선택받을 수 있을 것인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의 시대, 이제 마을은 각자만의 즐거움을 넘어 지속가능한 생존과 번영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작년 한 해 동안 지역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이러한 고민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마을 자체가 신도시인 특성상 오래도록 주민이 공유해 온 역사 콘텐츠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주민들과 많은 논의 끝에, 한국적 가치를 담고자 했던 신도시의 당초 콘셉트를 살리며, 마을 공원 중앙에 경복궁 경회루와 비슷한 느낌으로 조성한 정자에서부터 생각을 출발하기로 했다.
전통 정자이니 전통놀이와 전통문화교육 위주로 구성할 수도 있지만, 이와 더불어 현대적 신도시에 맞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전통적인 학당의 방식을 취하면서도 현대인의 심리, 인문학,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심화할 수 있는 ‘청계학당 캠퍼스’가 그렇게 탄생했다.
매월 주제를 정해, 강연 및 공연과 함께 이와 연관된 작은 체험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필자는 때로는 새벽까지 기획안을 수정하고 보완했다. 행정 및 지역사회 여러 주체들과 소통하고, 행사 당일 행사장을 뛰어다니고 조정하며, 앞장서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강조했던 개념이 바로 ‘캠퍼스’다. 분리된 공간에서 하는 취미활동을 넘어, 마을의 모든 요소가 주민의 경제, 교육, 생활에 실질적인 힘이 되도록 하는 마을활동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마을의 모든 ‘전공’을 아우르는, 교육과 도전의 공간인 ‘마을캠퍼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기존의 마을 행사나 취미 교육과는 다른 만큼 낯설게 느끼는 시각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마을의 꿈’을 이야기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었다.
이제 다음 세대의 ‘일’과 ‘삶’이 일치하는 마을공동체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자발적인 봉사단체를 조직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의 모든 자원이 더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차별화된 활동이 일어나 특화된 콘텐츠와 일자리가 생기길 바란다.
마을공동체는 가장 새로운 것을 마음껏 시도해보기에 충분히 넉넉하고 안전한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 그런 마을에서, 나는 또래 청년들에게 마을활동을 추천하고 싶다. 중앙의 일자리만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내 생활 반경에서 충분히 가치가 창출되는 일자리가 있음을 마음의 확대경으로 찾아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를 연재하는 백현빈은?
- 서울대학교 정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 <마을의 인문학> 대표
- 화성시 청년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교육복지분과위원장
- 마을 속의 수많은 질문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청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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