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⑨ “벚꽃 엔딩, 노래는 계속 들리잖아”

이은지 기자 승인 2021.08.26 05:00 의견 1
도시의 봄날 벚꽃이 핀 풍경 (출처 : 본인제공)

최근 몇 해 동안 봄날의 거리를 걸을 때 한번쯤은 ‘벚꽃 엔딩’ 노래를 듣게 된다. 가수 장범준이 작사, 작곡한 이 곡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이후 매년 봄마다 들리는 음악이 되었다.

‘배고픈’ 예술인 사이에서 장범준은 ‘벚꽃 연금’을 받는다는 행복한 농담을 들을 만큼 상당한 저작권 수익을 얻고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벚꽃 엔딩’은 계속 들린다.

한편, 해를 거듭하고 벚꽃이 흐드러질 때면 근심이 깊어지는 곳도 있다. 바로 대학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인원이 대학의 모집정원보다 적어지는 상황에 이르며,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대학들이 적지 않다.

며칠 전 52개 대학이 정부 재정지원에서 탈락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내년에 벚꽃이 필 때면 적지 않은 대학이 ‘엔딩’을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뜻한 남부 지역에 있는 지방대학부터 문을 닫는 현실을 비유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참 잔인한 벚꽃 엔딩이다. 이 노래가 끝나기 전 어느 대학의 폐교 소식이 들릴지 걱정이다.

대학 안으로 들어가 학과 단위로 살펴보면 더 심각하다. 노동 현장에서 대우를 받기 위해 학위가 필수처럼 인식되고, 대학 내부에서는 상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상당수 대학은 취업 준비기관처럼 변질됐다.

학문의 내용보다 취업의 성과가 중요해지는 분위기에 정부와 사회도 어느 정도 편승하며, 학과 역시 취업률로 서열이 매겨지게 되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연구가 필요하거나 당장의 취업 실적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문, 사회, 예술, 기초과학 등의 분야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필자의 아버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40여 년간 대학에서 국문학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정년까지 지방대학에 재직했다. 비교적 건실한 대학이었지만, 아버지의 정년을 앞두고 학교는 ‘더 필사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문과를 구조조정하기 시작했다.

커리큘럼에서 기초 언어나 순수 문학의 비중이 줄었다. 학과의 명칭까지 바꾼 후 소속되는 학부도 이리저리 바꿨다. 마침내 학생 모집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학과를 지키기 위해 고민하며 농성을 이어갔다.

대학 안팎의 여러 경로를 통해 학과를 되살리고자 노력했지만, 현실의 거대한 흐름은 집채만 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한계를 직면하며 집으로 돌아와 홀로 오랜 시간 괴로워하고 아파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를 연재하는 백현빈은?
- 서울대학교 정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 <마을의 인문학> 대표
- 화성시 청년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교육복지분과위원장
- 마을 속의 수많은 질문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청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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