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⑫ 공동주택, 정직한 공동생활을 위한 제안

이은지 기자 승인 2021.09.03 05:00 | 최종 수정 2021.09.04 13:59 의견 1
공동주택이 밀집한, 도시의 풍경 (사진출처 = 픽사베이)

준공 이후, A와 B 아파트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A 아파트는 입주예정자 모임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거의 그대로 입주자 대표회의를 장악했다. 그들의 비상식적인 운영 행태는 비상식적인 관리비 상승으로 나타났다. 주민들의 항의가 있자 그들은 비상식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모든 기본 시설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들은 제대로 하지도 않은 추가 조경공사를 했다고 하며 영수증 하나 없이 아파트에 비치된 공금을 유용하기도 하고, 아파트 직원에게 폭언을 하거나 부당한 지시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B 아파트의 경우 기존 입주예정자 모임 출신과, 소위 ‘신진’ 대표가 함께 입주자 대표로 선출되었다. 필자 역시 입주자 대표로 참여했다. 신진 대표들은 건설사와 입주예정자 모임에서 생색을 내던 설계 변경에서 부실한 점들을 포착했다. 기존 입주예정자 모임과 가까운 주민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이후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분쟁 상황이 연출됐다. 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신진 대표들을 향해 작은 것 하나까지 문제를 지적하며 최대한 논란을 키워갔다. 준공 전까지의 비상식적 행태에 대한 항의와, 분명치 않은 설계변경을 한 건설사를 대신하는 입주예정자 모임 운영진을 옹호하는 목소리, 이 둘 사이의 갈등은 마치 조정 기관이 없는 소송장과 같았다.

다행히 필자는 A 아파트에서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해 관리비를 반값으로 낮췄다. B 아파트에서도 분쟁 이후 다시 한 번 입주자 대표로 선출되어, 갈등을 겪으며 침체되었던 단지를 여러 가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살려내고자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주민의 관심이 없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똑같은 계약자인데도 다른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나의 계약 조건이 더 불리해지기도 하고, 이유도 알지 못하는 비용이 부당하게 나가도 내막을 세세히 파악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관심을 갖고 보지 않는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 훗날 전체적인 손실로 각 세대에게 돌아갈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건설사가 처음부터 더 구체적이고 내실 있게 주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건축심의를 강화함과 동시에 대표성이 모호한 소수가 임의로 시공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필요할 경우 분양 과정에서 모든 분양계약자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설계나 디자인에 대해 수요 조사를 하고 그에 맞춰 시공하는 것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나아가 조감도와 견본주택만 보고 집을 분양받는 현재의 선분양제를 개선해 시공비용의 원활한 금융을 전제로 준공 후 분양을 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것을 제안한다.

입주 이후에도 입주자 대표회의를 소수 회의 방식이 아닌, 타운홀 미팅(townhall meeting) 방식의 상시 총회나 온라인 투표 형태로 운영하도록 개선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자체도 ‘주민이 알아서’ 하라고 방임하기보다는, 공동주택의 운영 개선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조금 더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컨설팅을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경제에서 가장 줄이고자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현실적으로 시장의 중요한 재화인 ‘주택’이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나아가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를 연재하는 백현빈은?
- 서울대학교 정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 <마을의 인문학> 대표
- 화성시 청년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교육복지분과위원장
- 마을 속의 수많은 질문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청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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