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⑩ “위기의 지방대, 컬쳐캠퍼스로 살리자”

이은지 기자 승인 2021.08.27 05:00 | 최종 수정 2021.08.27 14:04 의견 2
2017년 '국가균형발전정책 아이디어 대국민 공모전'에서 입상한 백현빈 마을의인문학 대표가 시상식에 참석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 본인제공)


이런 사례는 지방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필자의 지인 청년은 수도권의 한 대학을 졸업했는데, 졸업 후 씁쓸한 하소연을 전했다. 자신은 비교적 실용 학문에 가까운 전공을 선택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학과마저 구조조정의 바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본래의 단과대학과는 관련이 적은 다른 단과대학으로 옮겨가 ‘곁방살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루는 학생회를 하는 본인 동기가 서러운 이야기를 토로했다고 한다. 새 단과대학에 기존부터 있던 학과 소속의 교수가, 너희 과는 우리 과보다 점수가 낮고 열등하다는 식으로, 은근히 업신여겼다는 것이다. ‘지붕을 잃은 설움’이란 저런 것일까.

결국 끝끝내 자신의 졸업장에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소속이 찍혀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모교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몇 년 후 학교를 찾아갔더니, 본인 과는 여전히 곁방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었고 되레 과 교수는 새 단과대학의 보직을 맡아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고 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새 삶을 찾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그 청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소위 서울의 명문 대학 학생이 아니면 원하는 것을 배울 자격도 없는 거냐며 자조 섞인 말을 전했다.

지방대가 문을 닫고 기초학문이 통폐합을 면치 못하는 것은, 지방의 지적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방대학은 설령 서울의 명문대학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각 지역의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다른 지역기관에 비해 비교적 풍부한 교육·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들이 사라진다면, 적든 많든 이곳에서 누적된 지적 자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문, 사회, 예술, 기초과학 등의 학문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이며 정신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말하면서 지방에서 이 분야를 통폐합하면, 서울과 중앙이 아닌 곳에서는 ‘가치’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어떻게 펼치고 심화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2017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최한 국가균형발전정책 국민 제안 공모에 참여해 지방대학을 컬쳐캠퍼스(문화캠퍼스, culture campus)로 만들자는 제안을 내 당시 위원장(장관)상을 수상했다.

그 요지는 바로, 지역마다 어느 정도 지적, 문화적, 경제적 중심 역할을 해온 많은 지방대학들을 지역사회와 밀접하게 연계하며 살리자는 것이었다. 지방대학의 각 학과별로 교수, 학생, 연구자가 함께 전공을 살린 지역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이 다시 배운 것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심화된 것들은 아예 정식 커리큘럼으로 개발하거나 학위과정에 준하는 수준까지 격상하고, 이런 프로그램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학생이나 지역 주민이 관련 분야로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이런 방식이라면 지역에 따라 인문, 사회, 예술, 기초과학도 살릴 수 있다고 보았다. 지방대학이 지역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곧 대학별 수시 모집을 시작으로 입시 전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년 봄에도, 그 다음 해 봄에도, 수많은 대학 캠퍼스에서 많은 청춘들이 ‘벚꽃 엔딩’의 가사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이 흐드러진 이 거리를” 마음껏 누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마을청년, 세상을 만나다]를 연재하는 백현빈은?
- 서울대학교 정치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 <마을의 인문학> 대표
- 화성시 청년정책위원회 부위원장, 주민참여예산위원회 교육복지분과위원장
- 마을 속의 수많은 질문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청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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