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서울 곳곳에서 만난 독립운동가의 숨결

김형주 기자 승인 2022.06.09 16:00 의견 1
서울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현충시설인 국립서울현충원이 있다. (자료. 서울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념하는 6월 6일 현충일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 6.25 전쟁이 발발했던 달이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현충시설인 국립서울현충원이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으며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호국영령을 살펴보기로 한다.

국립서울현충원 장병묘역과 태극기 (자료. 서울시)


독립운동가 서재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서재필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훈한 독립운동가로서 우리에게는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독립문역 인근 독립문공원에는 서재필 동상이 있다.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만들고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독립신문'은 한성순보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신문이고, 민간 대중 신문으로는 국내 최초였다.

이후 독립협회 해산과 함께 미국으로 추방됐던 서재필은 1919년 3.1운동 때 기고문을 실으면서 외교적 선전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애국지사 서재필의 묘 (자료. 서울시)

그동안 모았던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사용했던 서재필은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됐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독립문과 독립협회 터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독립문에 가면 볼 수 있는 서재필 동상 (자료. 서울시)


일제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

두 번째로 만날 독립운동가는 강우규 의사다. 강우규 의사는 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의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진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해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돼 있으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 받았다.

왈우 강우규 의사의 묘 (자료. 서울시)

강우규 의사가 일본 총독의 마차에 던진 폭탄은 아쉽게도 빗나갔지만, 뒷차를 맞히면서 일본인 취재 기자 2명을 포함한 3명이 사망하고, 정무총감인 미즈노 렌타로, 뉴욕시장의 딸이었던 해리슨 부인, 만주 철도 이사장인 쿠보, 호위 군경, 조선총독부 관리 등 37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강우규 의사는 1920년 11월 29일, 66세로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면서 순국하였는데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라는 시를 남겼다.

현재 옛 서울역 광장에 강우규 의사 동상이 건립되어 있고, 서울시는 2019년부터 강우규 의사를 기리기 위해 서울역 인근의 서울역버스환승센터(02-007) 정류소 명칭을 ‘서울역버스환승센터. 강우규 의거 터’로 병기하고 있다.

강우규 의사를 기리며 정류소 명칭을 '서울역버스환승센터. 강우규 의거 터'로 병기했다. (자료. 서울시)


일제의 간담을 서늘게한 의열단, 김상옥·나석주 의사

마지막으로 소개할 두 인물은 의열단 출신인 김상옥 의사와 나석주 의사다.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김상옥 의사는 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로,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일제에게 쫒기는 와중에도 총격전을 벌이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게 한 인물이다.

김상옥 의사의 묘 (자료. 서울시)

특히 종로 한복판에서 권총 2자루로 무려 3시간 반 동안이나 총격전을 벌였는데, 총알이 다 떨어지자 벽에 기댄 채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마지막 한 발로 자결, 순국했다. 총격전에서 수많은 일제 경찰이 사상당했는데, 그 수가 16명이나 달했다.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는 김상옥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의사가 순국한 곳이 있는 종로4가 북쪽 효제초등학교 앞길은 그의 이름을 딴 '김상옥로'로 명명됐다.

그가 다녔던 효제초등학교에는 김상옥 의사의 유언인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라는 말이 담긴 비문이 세워져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김상옥 의사의 동상 (자료. 서울시)

나석주 의사 역시 의열단 출신인데, 위에서 소개한 세 독립운동가처럼 독립유공자 묘지가 아닌, 무후선열제단에 위패만 있다. 왜냐하면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의 묘지에 매장됐기 때문이다.

나석주 의사는 1926년, 일제가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벤치마킹하면서 조선인을 수탈하기 위해 세운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에 각각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폭탄은 불발했고, 출동한 일본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민족의 얼' 기념비 뒤, 무후선열제단이 있고, 이곳에 나석주 의사의 위패가 있다. (자료. 서울시)

하지만 체력이 다했다고 느꼈는지 전봇대에 기대어 가슴에 총을 쏴 자살을 시도했지만, 일본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후 수술을 거부하고,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했다. 나석주 의사 역시 김상옥 의사처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훈했다.

나석주 의사의 거사 흔적은 현재 을지로에서 만날 수 있다. 을지로입구역 지척, 하나금융그룹 명동지점 앞에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이곳이 과거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자료. 서울시)

앞서 소개한 독립운동가 외에도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과 서울 곳곳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마주할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살펴본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기억하며, 잊지 말자! 우리가 걷는 서울은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닿았던 곳이다.

[출처:서울시 조송연 시민기자]

저작권자 ⓒ 경인바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